한 곳에서 오래 일하면 만든 게 쌓인다. 내 경우엔 노트와 스크립트와 문서와 원고가 한 폴더에 뒤섞여 있었다. 회사 데이터를 다루는 코드 옆에 내가 쓴 에세이 초안이 있고, 그 옆에 회의록이 있고, 또 그 옆에 개인 메모가 있었다.

몇 년을 그렇게 보냈다. 문제라고 느낀 적도 없었다.

선을 하나 그었다

경험과 판단은 내 것이다. 뭐가 문제였는지 알아본 것, 어떻게 풀지 정한 것, 그 결정에서 배운 것. 내 머리에서 나왔고 다른 데 가도 가져간다.

코드와 데이터와 시스템은 회사 것이다. 실제로 도는 스크립트, 멤버 정보, 매출 자료, 운영 계정. 회사 일을 위해 만들었고 회사에 남는다.

적어놓으면 당연해 보이는데 파일 하나하나에 대보면 애매한 게 많다. 내가 만든 자동화의 설계 문서는 어느 쪽인가. 설명은 내 것, 코드는 회사 것으로 나눴다. 뭘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내 판단이고 그걸 실행하는 코드는 회사 자산이다. 그래서 내 보관함엔 이런 문제가 있어서 이렇게 풀었다만 남기고 코드 사본은 안 둔다.

내가 운영한 팀의 활동 기록은 예외로 뒀다. 내가 만든 거라 내 보관함에 두되, 거기엔 멤버 실명과 소속과 발언이 있으니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. 보여줄 일이 있으면 이름과 회사와 특정할 수 있는 세부를 빼고 다시 쓴다. 이 블로그도 그 원칙 위에 있다.

나가려고 정리한 게 아니었다

솔직히 계기는 이직 준비였다. 포트폴리오를 만들려고 자료를 찾다가, 내가 뭘 가져가도 되는지 자신이 없다는 걸 알았다.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다 내 것처럼 다뤄온 것이다.

그 순간이 좀 불편했다. 나쁜 짓을 하려던 게 아닌데 기준이 없는 상태로 오래 있었다는 게.

그래서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있는 동안 지킬 기준으로 정리했다. 그러고 나니 오히려 편해졌다. 뭘 밖에 써도 되는지 아니까 쓸 수 있게 됐다. 기준이 없을 땐 애매해서 아무것도 못 썼다.

오래 일한 사람이 가진 제일 큰 자산은 결국 판단이다. 이 상황에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, 저 방법은 두 번 해봤는데 안 됐다는 것. 이건 인수인계 자료에 안 들어간다. 코드에는 결과만 남고 왜 그랬는지는 안 남는다. 회사에 남길 건 남기고 내가 가져갈 건 내 언어로 적어두는 일. 이 둘은 서로 뺏는 관계가 아니다.

따라 해보기

지금 일하는 곳에서 만든 것 중에 하나만 골라, 이건 내 것인가 회사 것인가를 써보면 된다. 애매하면 설명과 실물을 나눠본다. 설명은 내 것이고 실물은 회사 것이다.